- 작성자홍보실
- 작성일시2025/07/0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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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를 되살리는
빛나는 여정
- 한성수 선임연구원 자원회수연구센터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이는 폐배터리의 대량 발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폐배터리는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다. 리튬, 니켈, 코발트 같은 귀한 금속을 품은, 다시 쓰일 가능성의 광산이다.
자원회수연구센터의 한성수 연구원은 바로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폐배터리에서 핵심광물을 효율적으로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하며, 자원의 선순환을 그려나간다.
흥미롭게도 그의 이름 ‘성수(盛琇)’는 ‘가득 찰 성’에 ‘옥돌 수’를 쓴다. 가치 있는 광물을 채워간다는 뜻의 이름처럼,
그는 오늘도 쓸모 있는 광물을 가려내고 살리는 연구에 몰두한다. 마치 운명처럼.
만나서 반갑습니다. 연구원님 연구 분야 먼저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2022년부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회수연구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성수입니다. 저는 현재 자연에서 채굴한 원광이나 폐배터리 같은 도시광산 자원으로부터
핵심광물을 효율적으로 회수하기 위한 ‘선광’ 기술 및 ‘재활용 전처리 공정’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폐배터리의 경제적인 재활용을 위한 저에너지·고효율 전처리 공정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회수연구센터 연구자로 일하게 되신 계기가 궁긍합니다.
대학 4학년 시절, 진로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몽골과학기술대학교의 선광 분야 해외자원개발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해 운 좋게 합격했어요. 인턴십에 앞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사전 교육을 받았는데요. 처음 마주한 체계적인 연구 인프라와 활기찬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자원회수연구센터의 선광 전문 연구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죠. 몽골 현지의 대규모 선광 플랜트를 접하며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고요. 이후 대학원에서 자원처리공학을 전공하며 선광 분야 역량을 차근차근 쌓았고, 2022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합류했습니다.
* 폐배터리로부터 제조한 블랙매스를 바라보는 한성수 연구원
폐배터리 재활용을 위한 저에너지·고효율 전처리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연구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수명이 다한 리튬이온 배터리에는 첨단 산업에 꼭 필요한 리튬, 니켈, 코발트와 같은 핵심 금속이 다량 남아 있어 재활용 가치가 높습니다. 하지만 배터리 내부의 복잡한 구성 물질을 효과적으로 분리하기 위해선 정교한 처리 공정 기술과 설계가 필요한데요. 저는 현재 방전, 파쇄, 분쇄, 분급, 선별 등으로 구성된 전처리 공정을 설계하며, 이를 통해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이 함유된 고순도 ‘블랙매스’를 안정적으로 제조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블랙매스는 양극재와 음극재가 혼합된 분말 형태의 중간 산물로, 핵심 금속을 추출하는 후공정인 제련의 주요 원료가 되죠.
현재 국내 여러 기업에서 폐배터리 재활용을 위한 전처리 공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구원님이 개발 중인 공정이 기존 공정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나요?
전처리 공정별,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진단할 수 있는 모니터링 기술을 접목한 것입니다. 더불어 동박, 알루미늄박, 분리막 등 블랙매스 품질을 저해하는 불순물을 공정 초기 단계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이를 통해 전체 에너지 소비는 최소화하면서도 금속 회수 효율은 극대화하는 친환경적인 재자원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 기술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상용화를 위한 과제가 있다면요.
현재 저희는 SK에코플랜트와 협력하여 실증 중심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개발 중인 전처리 공정의 현장 적용 속도는 빠를 것으로 기대되며, 향후 5년 이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운영 안정성 확보, 다양한 배터리 형태에 대한 유연한 대응, 처리 용량 확대와 같은 기술적 고도화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적의 조건을 도출하는 것이 핵심 과제이죠. 하지만 이러한 과제들 역시 산업계와의 공동 실증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방전, 파쇄, 분쇄, 분급, 선별등을 통한 폐배터리 재활용 전처리 단계
핵심광물 회수를 위한 선광 기술 연구도 진행 중이시죠. 다양한 국제 공동 연구도 수행하고 계시던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현재 니켈과 희토류 확보를 위한 국제 공동 연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먼저, 니켈 매장량과 채굴량 세계 1위인 인도네시아의 반둥공과대학교(ITB), 그리고 고려아연과 협력해 국내외 저품위 니켈광을 대상으로 한 선광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와는 저농도 희토류 자원을 고효율로 선광하는 기술을 함께 연구하고 있고요.
이 과정에서 2023년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학교에 방문했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금속공학과 학생들과 함께 실험을 진행하며, 현지 연구 환경을 경험했는데요. 그때 교과서에서나 보던 재래식 분석 장비들을 직접 마주하게 됐어요. 처음엔 이런 장비로 제대로 된 분석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었죠. 하지만 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반복 측정을 하고, 논문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연구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장비나 환경이 아니라, 실험에 성실하게 임하는 태도임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연구자로서 겸손함을 배우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연구원님이 수행 중인 선광 및 전처리 공정 연구가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채굴한 자원을 선광·제련·소재화해 중간재로 가공하는, 이른바 ‘중간 산업’에서 선진 기술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원 빈국이라는 한계로 인해, 이러한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실증 경험이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또한, 중국을 비롯한 해외 자원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도 높은 편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품위 광물, 산업 부산물, 폐자원 등 미활용 자원을 고부가가치 금속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실증 연구를 추진하며 약점을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간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은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를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광물 수입 의존도를 줄여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으며, 국내 제조업의 핵심 소재 자립도를 높여 배터리나 반도체 등의 품질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죠. 동시에 폐자원 재활용과 저에너지 공정을 통한 탄소 배출량 저감으로 탄소중립 사회 실현에도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 연구자로서 겸손함을 배우게 된 2023년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학교 방문
광물자원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 중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광물의 흥미로운 점은 ‘경제성’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채굴되고 활용되는 ‘자원’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생산 단가가 아닌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먼저 결정되는 구조이기도 하고요. 대표적인 사례가 ‘금’입니다. 현재 금 시세에서는 광석 1 톤에 금이 1.5 g만 포함되어도 경제성이 있다고 평가됩니다. 반면, 선광·제련 과정에서 단 1 g만 손실돼도 막대한 경제적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인력이 투입되죠. 최근 금값이 급등하면서 과거에는 경제성이 낮아 외면받던 광석이 다시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가격 하나로 흙이 자원이 되고, 자원이 다시 흙이 되는’ 상황을 체감하고 있죠.
이러한 구조는 폐배터리 산업에도 적용됩니다.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과거에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의 금속 가격이 낮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핵심광물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결국 광물 시장은 주식 시장처럼 국제 정세와 정치·경제적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자원 전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핵심광물 공급망 및 폐기물 재자원화가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구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은 무엇인가요?
저 역시 ‘자원 전쟁’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시대를 살고 있다고 느낍니다. 제가 참여 중인 핵심광물 회수를 위한 선광·전처리 공정 개발 연구 역시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는 듯해요. 단순한 학문적 주제를 넘어 산업·외교·환경·안보와 직결된 분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일시적인 관심에 흔들리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신뢰받는 연구자가 되자고 늘 다짐하고 있고요. 제 단기적인 목표는 지금 제가 개발 중인 폐배터리 재활용 전처리 공정이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핵심광물 회수 및 순환 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신뢰받는 인프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 전처리 공정별 에너지 사용량을 측정, 진단하는 모니터링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