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이승배
- 작성일시2022/01/04 00:00
- 조회수463
※이 글은 2021년 12월 26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칼럼의 원문으로서 저자가 사진을 추가하여 게시합니다.
링크:https://m.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112262125015#c2b
2017년 경남 진주시의 한 산업단지 조성 중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공사를 멈추고 조사한 결과 백악기의 다양한 공룡, 익룡 발자국 약 8,000 점이 확인되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 거대한 지층 덩어리를 예정대로 부수고 화석들을 이동한 후 공장을 짓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공장 몇 개를 포기할 것인가. 진주 시민들과 고생물학자들은 자연의 위대한 유산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고, 우여곡절 끝에 이 장소는 보존이 결정돼, 2021년 9월 천연기념물 제566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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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and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338
https://newsis.com/view/?id=NISX20190409_0000614566&cID=10812&pID=10800
<2018년 5월, 정촌 화석산지의 모습>
희귀 동식물처럼 중요한 화석이나 화석산지도 천연기념물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12월 현재, 총 468건의 천연기념물 중 화석 또는 화석산지는 20건이다. 그 외에도 지자체가 15건의 화석이나 화석산지를 보호하고 있다. 중요한 화석은 문화재보호법과 매장문화재법의 보호 대상이기 때문이다! 먼 과거의 지구 환경, 생물의 다양성, 진화의 증거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인 화석이 법적으로 보호된다니 화석 연구자로서 반갑고 안심이 된다. 그런데 왜 하필 문화재법일까?
문화재법 제정 당시 화석은 천연기념물 중 ‘생물’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화석을 생물의 흔적쯤으로 인식했던 것일까? 화석이 문화재 취급을 받으니 어색한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석을 발견할 경우 그 현장을 변형하거나 훼손하지 말고 신고해야 한다. 연구를 위해서는 암석을 깨서 화석을 찾게 되는데, 암석을 깨고 일부러 화석을 찾는 것은 도굴에 해당한다. 내 땅에서 나온 돌은 내 것인데, 하필 그 돌이 화석이면 주인 없는 물건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 화석은 기증도 거래도 안 된다. 이제까지 국내 화석을 연구했던 많은 전문가들, 최근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화석 탐사 영상제작자들은 알고 있을까?.
문화재는 인간의 문화 활동에 의해 창조된 가치가 뛰어난 유무형의 유산을 가리키는데 화석의 형성은 문화 활동과 관계가 없다. 대신 화석이나 화석 산지, 천연동굴, 암석, 광물, 약수터 등 지질학적인 소재 중 가치가 높은 것들은 인류가 같이 누려야 할 지구의 유산이라는 뜻에서 “지질유산”이라 부르며, 문화유산과 대비되는 자연유산의 범주에 포함된다.
최근 문화재청은 자연유산의 시각에서 화석을 보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현행 문화재 법체계 안에서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자연유산으로서의 화석은 다양한 부처, 다양한 법과 얽혀있다. 화석을 포함한 퇴적암은 우리 국토 면적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하 깊은 곳까지 연장된다. 퇴적암을 건드리는 모든 사람, 행위가 화석과 관계되므로 국토부, 산업부, 환경부 등의 업무 영역과도 겹친다. 한편 대학과 연구소에 화석 연구비를 지원해 온 곳은 과기정통부이다.
<한반도 퇴적암 분포도>
진주시민들과 지질박물관의 관람객들을 보면 화석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식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화석 관련법의 정비를 통해 더 많은 화석이 발견되고 공유돼 지구 역사책의 빈 페이지들을 채우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견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길 기대해 본다. 한편으로는 중요한 화석이 남대문, 석굴암처럼 국보 대접을 받게 되고 일제강점기에 반출된 화석들이 환수되는 그 날도 꿈 꿔 본다.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우리나라 화석이라면 그 또한 국가적 보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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