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된 생명의 역사, 화석] 석회암의 고마운 비밀
  • 작성자이승배
  • 작성일시2022/01/06 00:00
  • 조회수607

이 글은 2021년 8월 8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칼럼의 원문으로서 저자가 사진을 추가하여 게시합니다.

링크: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108082129035

 

인류 문명의 급속한 발전은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돌을 꼽으라면 단연 석탄과 석회암을 들 수 있다두 암석 모두 생물체가 쌓여서 만들어진 암석인데화석 연료로 유명한 석탄에 비해 조금 덜 알려진 석회암 이야기를 해본다.

 

이미 수 천 년 전부터 인류는 물과 섞어 발라 말리면고르고 단단하게 굳는 성질이 있는 석회’ 가루를 건축에 사용했다석회는 특정한 돌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얻어 냈는데그 암석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석회암(limestone)으로 불렀다는 게 흥미롭다상업적으로는 흔히 석회석이라고 불리는 석회암은 19세기부터는 시멘트를 주원료로 마천루로 상징되는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석회암은 탄산칼슘(CaCO3)이 물속에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이다사실 조개나 소라 껍데기산호해면(스폰지), 성게나 불가사리 같은 극피동물들의 단단한 뼈대와 유공충이나 조류(藻類등 수많은 미생물의 빼대가 탄산칼슘으로 이뤄졌다이렇게 석회암은 생물들의 탄산칼슘 뼈대 나 그 부스러기가 모이고 쌓이고 다져져 만들어진 암석이다실제로 건축물 내장재로 쓰이는 석회암 판석에서는 다양한 모양의 화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전 K대학병원 신관의 석회암 내장재 속 고둥과 의문의 화석들

유성구 E아파트 건물 석회암 내장재의 고둥과 유공충 화석들(아래, 유공충의 크기는 지름 5mm 이하)

<대전 K대학병원 신관의 석회암 내장재 속 고둥과 의문의 화석들(), 유성구 E아파트 건물 석회암 내장재의 고둥과 유공충 화석들(아래유공충의 크기는 지름 5mm 이하)>

 

우리나라 강원 삼척태백영월정선충북 제천단양 지역에는 시멘트 공장이 많은데이것은 자연스레 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석회암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들 지역에는 약 5억 2천 만 년 전에서 4억 6천 만 년 전의 고생대 전기 동안 1 km 넘게 차곡차곡 쌓인 석회암사암이암 등의 퇴적암 지층들이 널리 분포한다물론 이 중에서 석회암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석회암의 형성과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고생대 전기 석회암에서는 다양한 화석들이 발견된다대표적으로 바다에 살았던 삼엽충완족류(조개사돈), 두족류고둥조개 등의 껍데기가 있다지금의 강원 남부충청 북부에 해당하는 땅이 약 5억 년 전쯤에는 바다생물이 살기 좋은 따뜻하고 얕은 바다 밑에 있었다는 뜻이다마치 모래진흙의 대부분이 산호나 조개껍데기의 조각과 가루로 이루어져 있는 지금의 열대 바다 속 풍경처럼. 

지질박물관에 전시된 오르도비스기 고둥(복족류) 석회암

<지질박물관에 전시된 오르도비스기 고둥(복족류석회암>

 

우리나라 고생대 석회암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연구된 화석은 삼엽충이다약 100년의 우리나라 삼엽충 연구 역사를 통틀어 수 백 종이 보고된 바 있다지금까지 수 십 종의 한반도 고유종이 발견됐으며 지금도 새로운 삼엽충이 나오고 있다.

 

고생대 말에 멸종한 절지동물인 삼엽충은 원시적 생물이라고 오해 받지만지금의 잠자리나 파리에 견줄만한 고성능의 겹눈 한 쌍을 가지고 있었다삼엽충 뼈대의 성분 역시 탄산칼슘(방해석)이었는데특이한 점은 겹눈을 이루는 각각의 렌즈들 또한 복굴절 현상을 일으켜 물체를 두 개로 보이게 하는 방해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더욱 놀라운 점은 삼엽충 스스로가 생화학적으로 정교하게 렌즈를 성장시켜 방해석의 이러한 광학적 단점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지질박물관에 전시된 삼엽충 화석에 섬세히 보존된 겹눈

<지질박물관에 전시된 삼엽충 화석에 섬세히 보존된 겹눈>

 

수 억 년 전 삼엽충과 같은 신비로운 생물의 뼈대가 이제는 시멘트로 변신해 집학교회사병원교량 등 우리 생활 터전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을 비롯하여 전국의 자연사박물관에는 석회암을 이루는 작고도 다양한 화석들이 전시돼 있다뜨거운 여름시원한 박물관에서그동안 공룡의 인기에 묻혀있던(?) 탄산칼슘 화석들에게 고맙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보면 어떨까?

첨부파일
  •   [크기변환]복족류 석회암.jpg (1.15MB / 다운로드:71) 다운로드